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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납북,
평생 이어진 여덟 가지 피해

납북귀환어부와 가족이 입은 피해는 귀환 직후의 처벌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북공작 동원과 간첩조작, 감시와 사찰, 연좌제와 사회적 낙인은 수십 년 동안, 때로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한눈에 보기

피해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1. 피해 01납북·억류북한의 납치
  2. 피해 02~03불법수사·처벌고문, 찬양고무 조작
  3. 피해 04대북공작 동원역용공작·색출공작·간첩조작
  4. 피해 05~06전향 강요·사찰수십 년 감시
  5. 피해 07연좌제가족의 취업·진학 박탈
  6. 피해 08낙인·트라우마공동체에서 고립
피해 01

강제 납북과 북한 억류

납북은 어부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납치를 피해 달아나다 북한의 총격에 배가 가라앉아 숨진 어부도 있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진 어부도 있었습니다. 억류된 어부들은 출신 지역의 관공서와 군경 배치, 물가 등에 대해 조사를 받은 뒤 공장과 농장 견학, 체제 선전 교육에 끌려다녔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 넘게 억류되었고, 억류 중 시달림을 못 이겨 목숨을 끊은 어부도 있습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어부는 457명에 이릅니다.

남겨진 가족은 가장을 잃은 채 생계를 꾸려야 했습니다. 공안당국은 어부들이 ‘자진 월북해 환대를 받고 돌아온다’고 주장했지만,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로 어부들이 북한의 무력에 의해 강제로 납북된 납치 범죄의 피해자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피해 02

불법구금과 고문, 혹독한 전략심문

돌아온 어부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전략심문’이었습니다. 해군방첩대,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등 많게는 10개 기관이 참여한 합동심문반이 여관이나 시청, 관공서 건물에 어부들을 가두고 북에서 받은 ‘지령’을 캐물었습니다. 구속영장은 없었습니다.

영장 없는 구금

귀환 직후부터 구속영장이 집행되기까지 수일에서 수십 일 동안 불법으로 갇혔습니다. 1969년 귀환한 150명, 1972년 귀환한 160명 모두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고문과 가혹행위

지령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다 받았는데 너만 거짓말한다”며 구타했습니다. 몽둥이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가 이어졌습니다.

‘자진 월선’ 자백 강요

수사기관은 어부들이 어로저지선과 군사분계선을 스스로 넘었다고 자백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객관적 증거는 없었고, 유일한 증거는 강요된 진술이었습니다.

피해 03

‘찬양고무’ 조작과 부당한 형사처벌

북에서 보고 겪은 일이 그대로 범죄가 되었습니다.

수사기관은 억류 중 어쩔 수 없이 보고 겪은 일을 ‘북한을 찬양·고무했다’, ‘금품을 받았다’는 범죄 사실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강요된 자백을 근거로 반공법(탈출, 찬양고무), 국가보안법(금품수수), 수산업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북에서 보고 겪은 일수사기관이 만든 ‘범죄 사실’
끌려간 공장을 보고 “규모가 크다”고 말함“공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되었으며, 이렇게 건설하느라 얼마나 수고했느냐”고 북한을 찬양·고무
단체로 관람한 선전 영화·연극에서 박수를 침북한 체제 선전물에 박수를 쳐 찬양·고무
억류 중 지급받은 옷가지와 귀환 때 받은 과자신사복 한 벌, 과자 두 상자 등을 받은 금품수수
북한 경비정에 끌려감스스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탈출

당시에도 일부 법원은 찬양고무와 금품수수가 “생명과 신체의 안전, 무사 귀환을 위해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해 강요된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더 강한 처벌을 요구했고, 1960년대 후반부터 반공법 탈출죄가 유죄로 인정되기 시작해 15살 소년까지 처벌받았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찬양고무’와 ‘금품수수’가 북한의 협박에 의한 강요된 행위이거나, 귀환 후 가혹행위로 받아낸 임의성 없는 진술이라고 결정했습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한 1,288명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829명입니다. 징역형으로 옥살이를 한 선장과 기관장이 많았고, 집행유예를 받은 선원들도 평생 ‘전과자’라는 굴레를 썼습니다.

피해 04

대북공작 동원과 2차 간첩조작

국가는 납북귀환어부를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 공작의 도구이자 ‘간첩 후보’로 다루었습니다.

불법 · 대북역용공작

목숨을 건 이중간첩 노릇을 강요

‘역용공작’은 북에서 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한 귀환어부를 거꾸로 이용해, 지령을 수행하는 척하며 접촉해 오는 간첩을 잡으려는 공작입니다. 보안대·경찰·대북첩보부대는 전략심문 단계부터 역용공작에 쓸 수 있는 어부를 골라냈습니다.

  • 보안대는 한 귀환어부를 대상으로 1969년부터 14년 동안 ‘오징어공작’, ‘기러기1호공작’을 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이중간첩 활동을 요구받아 회유와 협박으로 몹시 괴로워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경찰은 10대에 납북되었던 선원을 대상으로 3년간 ‘무지개공작’을 벌였고, 북파공작원 훈련에 끌려간 귀환어부도 있습니다.

본인의 동의도, 법적 근거도 없이 일반 국민을 위험한 대북 첩보활동에 동원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자 반인간적 국가폭력입니다.

불법 · 간첩색출공작

간첩을 ‘찾는’ 공작이 간첩을 ‘만들다’

군 보안대와 경찰 정보과는 귀환어부 가운데 간첩을 찾아내겠다며 공작명을 붙인 내사와 공작을 수십 년간 이어갔습니다.

  • 보안대는 1969년 귀환한 150명 전원을 대상으로 1972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등대수사’를 벌였습니다. 한밤중 잠복·감청, 경찰을 사칭한 가택 침입, 문구멍을 뚫어 엿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 친구와 이웃을 정보원으로 포섭해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하도록 유도(‘유인언동’)하고, 친목회에 공작원을 침투시켰습니다.
  • 경찰이 집에 거짓 불온서신을 몰래 보내는 함정수사로 간첩을 만들어 8년간 옥살이를 시킨 사실이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으로 밝혀졌습니다.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군 보안대의 사찰, 범죄를 유도한 함정수사, 증거 조작은 모두 불법입니다.

2차 간첩조작

귀환 몇 년 후, 다시 간첩으로

귀환한 지 10년, 17년이 지난 뒤 영장 없이 다시 연행되어 수십 일 동안 불법구금된 채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된 어부들이 있습니다. 1970~80년대 전주·인천·고성·거제 등지에서 보안대와 경찰, 안기부가 이런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 징역 7년, 10년, 15년 등 중형이 선고되었고, 함께 지내던 가족과 마을 주민까지 ‘불고지죄’로 처벌받았습니다.
  • 1969년 ‘동해안지구 고정간첩단 사건’처럼 귀환어부와 지인, 일가족 16명이 한꺼번에 조작된 사건도 있습니다.
  • 1·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들이 고문으로 조작된 것으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피해 05

사상전향 강요

교도소에 수감된 납북귀환어부들은 좌익사상범처럼 취급되어 사상전향서를 쓰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전향을 거부하면 가석방에서 제외되는 등 불이익이 따랐습니다. 억울하게 납북되었다가 돌아왔을 뿐인데 ‘이적행위를 했으니 전향하라’는 요구를 받아야 했습니다. 사상전향제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 속에 1998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피해 06

끝나지 않는 감시와 사찰

감시와 사찰은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납북귀환어부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형사처벌은 끝나는 날이라도 있었지만, 법적 근거 없는 사찰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카드와 등급으로 관리

  • 납북귀환어부카드, 평가자료서, 시찰결과보고를 정기적으로 작성
  • 경찰서장이 위원장인 ‘납북귀환어부평가심사위원회’가 갑·을·병 또는 A·B·C 등급 판정
  • 6개월 이상 억류되면 ‘세뇌되었다’며 대부분 A급 분류
  • A(갑)급 1개월, 을급 2개월, 병급 3개월마다 동향 보고

일상까지 파고든 통제

  • 다른 지역에 다녀올 때마다 경찰서·파출소에 신고
  • 직장에 형사가 찾아와 상사에게 감시 지시
  • 이웃과 지인을 정보원으로 활용
  • 마을 이장으로 일하며 표창을 받아도 요시찰 해제는 없었음
피해 07

가족까지 덮친 연좌제

취업의 문이 막히다

자녀들은 신원조회에 걸려 공무원, 경찰, 공공기관, 방위산업체, 대기업 취업에서 탈락했습니다. 스튜어디스에 합격하고도, 경찰 필기시험을 통과하고도 떨어졌습니다.

바다에서도 밀려나다

선원수첩이 나오지 않아 선장이 되거나 큰 배, 외항선을 탈 수 없었습니다. 1971년에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984명을 어선에 태우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졌습니다.

해외 취업과 진학 제한

중동 건설 붐 때도 신원조회로 해외 취업이 막혔고, 진학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로 자녀 세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언니는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을 봤다. 두 번씩이나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 나도 번듯한 회사에는 취직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한다’며 ‘내가 죽어야만 너희가 피해를 보지 않을 텐데’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 건설호 납북귀환어부의 딸 김○애 씨 증언, 『통곡의 바다, 짓밟힌 희망』
피해 08

사회적 낙인과 트라우마

형사가 수시로 드나드는 집은 마을에서 ‘간첩 집안’이 되었습니다. 친척들은 피해를 입을까 왕래를 끊었고, 가족은 이웃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살았습니다. 피해자 가운데에는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워 진실규명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가폭력이 남긴 상처는 몸과 마음, 가족 관계와 지역 공동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 상처는 피해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가족과 다음 세대가 함께 짊어져 온 짐입니다.

피해를 입었다면, 지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위와 같은 피해를 겪었다면 진실규명 신청과 재심, 손해배상을 통해 피해회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피해 사실을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상담을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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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엄경선, 『통곡의 바다, 짓밟힌 희망』(강원민주재단, 2024) 제2부 ‘납북귀환어부들이 겪은 국가폭력’, 『진실의 힘, 희망을 빚다』(강원민주재단, 2025)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 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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