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위해 바다에 나갔다가 북한에 강제로 끌려갔던 어부들. 살아 돌아온 그들을 기다린 것은 위로가 아니라 불법구금과 고문, 형사처벌, 그리고 평생 이어진 감시와 연좌제였습니다. 납북귀환어부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1990년대 초까지 납북사건은 4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 통일부 공식 집계 전후 납북자 현황(2025년 10월 기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1기 진실화해위가 확보한 반공법·수산업법 위반 판결 대상자만 1,251명(중복 제외)에 이릅니다.
납북귀환어부들은 귀환 직후의 형사처벌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이들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첩 혐의자’, ‘간첩 용의자’라는 딱지를 떼지 못했습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까지 신원조회에 따른 연좌제, 일상적인 사찰과 통제를 당했습니다.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이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1957년 거진항 덕길호 등 어선 8척과 어부 47명이 납북된 것을 시작으로, 1967~1968년과 1971~1972년에는 한 해 수백 명의 어부가 납북되었습니다. 동해에서는 1982년 제5마산호가 마지막이었고, 서해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납북이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어부들이 어로저지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스스로 북으로 갔다고 몰아세웠습니다. 귀환한 어부들은 합동심문반에 넘겨져 영장 없이 갇힌 채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자진 월선’을 자백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 자백을 근거로 반공법 탈출·찬양고무죄, 국가보안법 금품수수죄,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습니다.
처벌이 끝난 뒤에도 정보기관은 납북귀환어부 전원을 감시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위해 등급을 매겨 수십 년 동안 동향을 보고했고, 귀환어부를 이중간첩 노릇을 하는 대북역용공작에 동원하거나, 간첩색출공작과 함정수사로 일부 귀환어부를 간첩으로 조작해 다시 중형을 선고받게 했습니다. 1971년에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984명의 어선 승선을 막으라는 지시까지 내려졌습니다.
같은 사건을 부르는 말이지만, 담고 있는 책임의 무게는 다릅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쓰는 공식 명칭입니다. 과거사정리법은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정합니다. 다만 ‘인권침해’라는 말은 피해 사실을 가리킬 뿐, 누가 무엇을 저질렀는지는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에게 가한 폭력이라는 뜻입니다. 가해의 주체가 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납북귀환어부들에게 가해진 구금과 고문, 사찰과 연좌제는 모두 경찰, 군 보안대, 중앙정보부(안기부), 검찰 등 국가기관이 저질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범죄입니다. 당시의 헌법과 법률로도 금지된 불법체포·감금, 고문과 가혹행위, 증거 조작, 법적 근거 없는 사찰을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납북귀환어부는 단순한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이 확인한 국가의 불법행위와, 그 행위가 위반한 헌법·법률입니다.
| 국가의 불법행위 | 내용 | 위반한 헌법·법률 |
|---|---|---|
| 불법체포·불법구금 | 귀환 직후 구속영장 없이 수일에서 수십 일 동안 여관, 시청, 수용소 등에 가두고 조사 | 헌법 제12조(신체의 자유, 적법절차, 영장주의) 형법 제124조(불법체포·불법감금) |
| 고문·가혹행위 |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등으로 ‘자진 월선’과 간첩 혐의 자백 강요 | 헌법 제12조 제2항(고문 금지)·제7항(강요된 자백의 증거능력 부정) 형법 제125조(폭행·가혹행위) |
| 허위 자백에 의한 처벌 | 강요된 자백을 근거로 기소하고, 법원은 객관적 증거 없이 유죄 판결 | 헌법 제12조, 제27조(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제422조(재심사유) |
| 수사권 없는 기관의 수사 |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군 보안부대가 귀환어부를 연행·수사하고 서류를 다른 기관 명의로 작성 | 당시 군법회의법·군사법원법(군 수사기관의 수사 범위)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
| ‘찬양고무’ 조작 | 억류 중 어쩔 수 없이 보고 겪은 일(공장 견학, 영화 관람, 지급받은 옷가지)을 북한 찬양·고무, 금품수수로 꾸며 처벌 | 헌법 제12조, 제19조(양심의 자유)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재심사유) |
| 대북역용공작 동원 | 본인 동의나 법적 근거 없이 귀환어부를 이중간첩·대북 첩보활동에 동원 |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 제12조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제324조(강요) |
| 간첩색출공작·함정수사 | 정보원을 심어 북한 찬양 발언을 유도하고, 거짓 불온서신을 보내는 등 증거를 조작해 간첩 혐의를 만듦 | 헌법 제12조, 제17조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제155조(증거위조) |
| 2차 간첩 조작 | 귀환 수년~수십 년 뒤 다시 연행해 고문으로 간첩 혐의를 만들어 중형 선고 | 헌법 제12조, 형법 제124·125조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사유) |
| 법적 근거 없는 사찰·감시 | 납북귀환어부카드, 평가자료서로 등급을 매겨 수십 년간 동향 감시, 이웃을 정보원으로 활용 |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4조(거주·이전의 자유) |
| 연좌제 | 가족과 친척까지 신원조회로 공무원 임용, 취업, 해외 취업, 진학에서 탈락시키고 선원수첩 발급 거부 | 헌법 제13조 제3항(친족의 행위로 인한 불이익 금지) 제15조(직업선택의 자유), 제11조(평등권) |
| 사상전향 강요 | 수감된 귀환어부에게 사상전향서 작성 강요 | 헌법 제19조(양심의 자유) |
※ 헌법 조항은 현행 헌법 기준입니다. 신체의 자유, 영장주의, 고문 금지는 당시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었고, 연좌제 금지는 1980년 헌법에 명문화되었지만 귀환어부 가족에 대한 연좌 피해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북한의 납치 피해자였던 어부들은 귀환 후 대한민국 국가기관에 의해 두 번째 피해를 입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고, 국가가 사과하고 피해를 회복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피해회복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가해자인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입니다.
동·서해에서 납북사건 발생.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대규모 납북과 강도 높은 처벌
귀환어부 감시·사찰 체계화, 간첩조작 사건 잇따름
1기 진실화해위원회, 태영호 사건 등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 사건 진실규명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2기 진실화해위 첫 진실규명(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982명 직권조사 결정 · 강원도, 전국 최초 납북귀환어부 지원 조례 제정
2기 진실화해위 조사 종료. 납북귀환어부 1,288명 진실규명결정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국회 발의
개정 과거사정리법 시행, 3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과 진실규명 신청 접수 재개(2028. 2. 25.까지). 진실규명결정 사건의 국가배상 청구에 장기 소멸시효 적용 배제
대통령, 국가폭력 피해자 초청 위로 오찬에서 사과
3기 진실화해위,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직권조사 결정
피해 사실 확인부터 진실규명 신청, 재심과 배상까지 활동가가 함께합니다.
참고자료 · 엄경선, 『통곡의 바다, 짓밟힌 희망』(강원민주재단, 2024), 『진실의 힘, 희망을 빚다』(강원민주재단, 2025)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 결정문 / 통일부 전후 납북자 현황